끝이 날 것 같지 않던 겨울이 물러선 자리에 기적처럼 꽃들이 세상을 뒤덮는다. 하지만 긴 인고 끝에 피어난 꽃이 만개한 시간은 길지 않다. 활짝 피었는가 하면 분분히 꽃잎을 휘날리며 표표히 사라져간다. 잠시 피었다 진 꽃들은 우리 마음속 깊이 각인되고, 다시 긴 시간을 이겨낼 희망과 에너지를 준다.
화가 이은영은 꽃을 그린다. 고흐도, 고갱도, 오키프도, 도상봉도 꽃을 그렸지만, 요즘 젊은 작가가 꽃을 그리려면 조금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온갖 매체를 활용해 개념적이고 실험적인 작업을 하는 게 젊은 작가의 특권이자 의무인 듯 여겨지는 분위기에서 캔버스와 유화물감이라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전통적인 소재인 꽃을 그린다는 게 오히려 용기 있게 느껴졌다. 작가란 시대의 유행을 떠나 자신이 절실하게 다루고 싶은 소재, 주제를 형상화해야 진실하고 힘 있는 작품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지난 2월 개인전에서 선보인 이은영의 꽃들을 보면서 이 작가에게 꽃이란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졌다.
삶과 죽음을 동시에 담고 있는 존재
〈Through the window〉 연작, oil on canvas, 160x240cm, 2009 |
상가건물 꼭대기 층에 자리 잡은 작업실에 들어서니 유화물감 냄새가 진동하고, 바닥에도 물감이 흩뿌려져 있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놓여 있는 캔버스에서 만개한 꽃들이 보였다. 그의 그림을 조금 떨어져서 보면 꽃의 형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겹겹이 쌓아 올린 붓질의 흔적만 보인다. 작가는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렸다 다시 칠하기를 수십 겹, 때로는 100겹씩 반복합니다. 내게는 그림의 형태나 빛깔만큼 붓질을 하는 과정이 중요하죠. 매순간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 쌓여 지금의 나를 이루듯 수정할 수 없는 붓질이 쌓여서 꽃을 이룬다는 느낌이 강합니다”라고 말한다. 한 번 붓질을 하고 나면 하루 이틀 마르기를 기다려야 하므로 한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보통 두세 달씩 걸린다고 한다. ‘왜 꽃이라는 소재에 집착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뉴질랜드에서 보낸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가 살았던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처치는 ‘가든 시티’로 불릴 정도로 아름드리나무와 꽃으로 가득한 곳이었어요. 집을 나서면 곳곳에서 꽃과 나무를 볼 수 있었죠. 어릴 때부터 꿈이 화가였고, 자연스럽게 꽃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한참 꽃을 그리다 저 자신을 돌아보았죠. 나는 왜 꽃을 좋아할까? 꽃의 어떤 부분이 나한테 그렇게 흥미로울까 하고.”
그는 유달리 죽음에 대한 공포가 강했다고 말한다.
“왜 그런지 대여섯 살 때부터 죽음이 그렇게 두려웠어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죽으면 어떡하지’ 하는 공포에 어쩔 줄 모를 정도였습니다.”
죽음에 대한 극심한 공포는 삶에 대한 엄청난 애착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그래서인지 그는 생명이나 자연, 동식물에 관심이 많았고, 삶과 죽음의 문제, 우주원리와 만물의 법칙에 대해 곰곰 생각하곤 했다고 말한다. 꽃이야말로 삶과 죽음을 동시에 담고 있는 존재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피어나는 꽃은 바로 그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내닫는다. 뉴질랜드에서 귀국한 후 그는 한때 화가가 아닌 다른 길을 모색한 적도 있었다.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하고 나니 헛헛하고 외로운 느낌이 몰려왔어요. 내가 좋아하는 미술을 하면서도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고민했죠. ‘내가 화가가 될 깜냥이 아니라면 작가를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생각에서 영국 리즈대학으로 유학, 예술경영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원래 의도와는 달리,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다’는 속마음을 확인한 시간이었다. 막상 붓을 놓는다 생각하니 그림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게 되고, ‘의미 없는 붓질만큼 허무한 것은 없다.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결심을 굳혔다. 꽃이란 소재를 고집한 데 대해 그는 “내가 정말 그리고 싶은 게 있는데, 사람들의 선입견 때문에 피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싶은 대상을 그려야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제대로 담길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대신 너무 구태의연해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그리는 게 중요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수십 겹, 백 겹 흔적이 남는 붓질
〈untitled〉, oil on canvas, 97x260cm, 2014 |
그는 그저 캔버스에 붓질을 할 뿐 어떤 새로운 기법도 활용하지 않는다. 대학 시절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실험해보기도 했지만, 겉으로는 새롭고 괜찮아 보일지 몰라도 ‘나를 속인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 후 나이프도 없이 오직 두껍고 빳빳한 붓만 사용해 그림을 그렸다. 몇 달씩 견고하게 쌓아 올린 붓질로 완성하는 그의 작품을 보면서 묘하게도 격렬한 몸짓으로 물감을 흩뿌렸던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작가 잭슨 폴록이 떠올랐다. 잭슨 폴록의 작품이 행위의 흔적을 담고 있다면, 이은영의 작품에는 붓질의 흔적이 담긴다. 그래서 잭슨 폴록의 작품이나 이은영의 작품이나 팽팽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이은영 작가는 물감이 뚝뚝 흘러내린 흔적을 캔버스에 그대로 남겨두기도 한다. ☞ 허위광고 그만! 진짜 주식, 위너스톡
“그것을 찌꺼기, 똥이라고 불러요. 흘러내리는 에너지의 찌꺼기, 똥 같다고 생각하니까요.”
그의 꽃들은 캔버스 중앙에 얌전히 자리 잡고 있지 않다. 크고 과장되게 그린 꽃들이 캔버스 밖으로 튀어나올 듯하다.
“보통 꽃을 생각할 때 아껴줘야 하는 하늘하늘하고 여릿여릿한 이미지를 떠올리잖아요? 하지만 저는 꽃의 생명력과 에너지에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물감 층을 하나하나 쌓아 꽃을 피워내면서 저 스스로 위로받고, 인생을 배우죠. 한순간 한순간에 충실하자는 다짐도 하고요. 그 에너지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어요.”
〈Through the window〉에서 그는 160×240cm짜리 긴 대형 캔버스 네 개에 거대한 노란색 꽃들을 그려 넣었다.
“당시 제가 사용하던 작업실 창문 크기와 똑같은 캔버스에 그렸죠. 어느 날 창밖을 내다보다 꽃이 빌딩처럼 솟아 있는 장면을 상상하며 그린 작품입니다. 제 그림에서 꽃의 종류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꽃 속에 우주의 법칙, 우주의 에너지를 담는다는 생각으로 그리니까요.”
〈white tulips〉, oil on canvas, 80.3x100cm, 2015 |
반대로 70×70cm, 33×33cm 작은 정사각형 캔버스를 꽉 채워 그리기도 한다. 그 그림들에 대해 “밀도가 높아지면서 ‘정중동(靜中動)’의 느낌이 강해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밖으로 뻗어나가려는 붓질과 그것을 가두려는 정사각형의 팽팽한 긴장과 균형이 느껴진다. 〈하나 그리고 둘〉은 오렌지색의 꽃을 그린 캔버스와 분홍색 꽃을 그린 캔버스가 서로 짝을 이루고 있다. 오렌지색 꽃에 분홍색 붓 터치가 끼어들면서 연관성을 드러낸다. 4개의 캔버스에 연관성 있는 그림을 조금씩 변형해 그려 넣기도 했다. 서로 짝을 이루는 작품들은 늘 함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꺼번에 소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물었다.
“각각 다른 곳에 있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연관성 있는 작품을 각기 소장하고 계신 분들을 연결시키는 의미가 생기지 않을까요?”
그는 최근 수개월에 걸쳐 ‘피워낸’ 꽃 위로 검정 물감을 덮는 작업을 하고 있다. 어렵게 피워낸 꽃을 왜 스스로 지우려 할까?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들었을 때 나온 작품입니다.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제목을 붙였죠. 제 그림은 붓의 가닥가닥 사이로 아래쪽의 물감이 엿보입니다. 검정 물감을 발랐을 때도 완전히 덮이지 않고 군데군데 아래에 있는 물감 층이 보이죠. 그것을 저는 ‘어둠에 완전히 먹히지는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했습니다.”
그는 여러 가지 감정을 섞듯 온갖 색깔의 물감을 섞어 검은색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완벽한 검정이 아니라 보랏빛이 도는 검정 등 여러 가지 톤의 검은색이 나온다. 원색의 두꺼운 물감 층 위에 검은색을 덮은 작품은 단색화 느낌이면서도 단색화와는 전혀 다른 독특한 작품이 된다.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렸다 붓질 하기를 몇 달, 그렇게 완성한 작품을 검정 물감으로 덮어버리다니. 아깝고 안타깝지 않을까? 그는 오히려 ‘속 시원했다’고 말한다. ‘뭔가 한 발자국 더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구상과 추상, 아름다움과 추함, 희망과 절망, 환희와 불안정함의 경계를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활짝 피어 있는 꽃은 곧 시들 존재임을 암시한다. 가장 아름다울 때 불안정함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죽음을 향해 나아가면서 생명을 노래하는 꽃들처럼 우리 삶 역시 순간순간 생명의 불꽃을 피워야 하지 않느냐고 그의 작품, 꽃들은 이야기한다.